눈 온 다음날 아침에는...

어느 음반 속지에 씌여있는 평론에서 본 것 같다. 음악은 콘서트홀에서 듣는것 보다 밖에서 듣는 것이 제격이라는 이야기. 난 워낙 차를 많이 타고다니기 때문에 cdp나 워크맨을 항상 갖고 다닌다. 때문에 음악은 거의 길거리에서 듣게 되는데, 가끔씩 음악이 바깥 상황과 어울리다 못해 한 덩어리가 돼버릴 때, 이 글을 떠올리곤 한다.

글쎄, 연주자가 호흡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는 것도 좋겠지만, 어두컴컴한 동굴같은 곳을 돈내고 일부러 찾아가서 음악을 듣고는 뭔가 뜻있는 일을 한 것처럼 뿌듯한 표정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일상 속에서 무심하게 흐르다가 어느 순간 음악이 바깥 세상과 손잡고 믿지 못할 조화를 이뤄내는 것을 발견하는 기쁨이 더 매력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21번 1악장과 애기능에서 날아오르는 비둘기,
눈 온 다음날 아침 골목길과 브람스 교향곡 1번 3악장,
같은 곡 4악장과 눈 쌓이고 추운데 바람까지 부는 일산신도시 - 벌판같은 곳에 아파트 몇 채 서 있는 곳 -
집에 돌아가는 밤길에 듣는 Manfred mann's Earth band의 question.
엘리베이터를 타고 5호선 종로 3가 역으로 천천히 내려갈 때 고조되는 합창 교향곡 4악장의 주제
그리고, 지난번 캠프에서 돌아올 때 들은 랩소디 인 블루...

그냥 집이나 공연장에서 저 음악을 들었다면, 저 광경을 음악 없이 지나쳤다면 이렇게 기억에 남을 수 있을까?

어제는 눈이 20년만에 최고 많이 왔단다. 혹시 오늘 오전에 이 글을 본 사람은 밖에 나갈 때 꼭 브람스 1번을 챙겨 가길 바란다.


www.freechal.com/kuorch99 2001-01-08

Monthly Archives

Pages

Powered by Movable Type 5.14-en

About this Entry

This page contains a single entry by pocorall published on June 10, 2001 4:23 AM.

오늘 꿈 was the previous entry in this blog.

오랜만이지? is the next entry in this blog.

Find recent content on the main index or look in the archives to find all content.